주일설교
어린 아이와 같은 성도 (막 10:13-16)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사람의 내면보다 조건을 보고, 관계보다 계산을 앞세웁니다. 한때 모두 어린아이였지만 어느 순간 그 순수함을 잃어버립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 어른의 기준에 맞춰 통제하려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지만 제자들은 그들을 막아섰습니다. 이 모습은 단지 제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1.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시는 분입니다. (14절)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왔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십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예수님은 아이들의 접근을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아이들은 방해가 아니라 환영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도 아이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가올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아니면 눈치를 보게 만드는 분위기인가요? 예수님의 교회는 아이들을 막는 곳이 아니라, 반겨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4-15절)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아이들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많이 아는 사람, 많이 이룬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자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안아)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16절)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막지 않으신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품으셨습니다. 아이를 안는다는 것은 따뜻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녀를 안아주듯이 예수님은 언제나 품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안수하시며 축복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삶 위에 임하도록 선포하신 기도이자, 복된 삶을 향한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 자녀를 축복하던 전통처럼 그들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우리 꿈의숲교회도 아이들을 품어주고, 인정하고, 축복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아니면 너무 계산적인 믿음을 지녔나요?
2. 이번 한 주 동안 내가 품고 축복해야 할 어린아이들을 정하고 기도합시다. (드림 서포터즈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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