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by 방송실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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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저 영원한 천국으로
조회수 39
이 땅에서 저 영원한 천국으로 (요 14:1-6) 1. 우리는 왜 이렇게 근심하며 살아갈까요? (인간의 현실) 여러분 요즘 가장 많이 드는 걱정이 무엇입니까? 건강 문제, 노후 문제, 자녀 문제 등 우리는 각자의 무게를 안고 살아갑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이루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오가는 진자와 같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결핍이라는 고통과 풍요로움 속의 공허라는 사이를 오고 가는 무게추에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는 더 깊은 본질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에 대해 ‘인간 안에 있는 근심’이라고 표현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 14:1)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인간의 중심 문제를 ‘근심’이라고 정확히 짚어 꿰뚫어 보신 것이지요. 2. 그렇다면 인간의 근심은 왜 해결되지 않을까요? (근심의 원인) 왜 우리는 이렇게 흔들릴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이 본질적인 해결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져도 불안하고 많은 것을 이루어도 공허합니다 왜냐하면 채워야 할 영혼의 자리에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것들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육체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생각과 마음, 그리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체는 눈에 보이지만 생각과 마음 심지어 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나무와 돌, 보이지 않는 것들에 기대어 마음의 불안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길을 잃었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영혼의 회복은 오직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3. 예수님은 인생의 길이자 영원한 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해결과 초청) 이때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님은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 아니라 길 자체가 되신 분입니다.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는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길이 되어주셨다는 말의 의미는 인생의 문제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어 주셨다는 말은 혼란의 문제 해결해 주심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생명이라 말씀하신 뜻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요 14:2)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해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삶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행복도 유한합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고통도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시작하여 영원으로 이어지는 여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헤븐 라이프 축제를 통해 이 땅에서의 삶을 넘어 영원한 천국으로의 삶으로 나아가시길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by 방송실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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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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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마 28:1-10)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의미는 단지 죽음을 이기셨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여러 차례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자들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의 아침, 그 모든 말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1.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선포된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십니다. 십자가는 실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구원이 완성되는 자리였습니다. 인간의 시선과 하나님의 계획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지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2. (두려움)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여인들은 무덤을 향해 나아가면서 두려움과 슬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빈 무덤과 천사의 모습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의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두려움의 현장이 곧 하나님의 계시의 자리가 된 것입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상황은 더 어두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깊은 자리임을 믿습니다. 3. 부활은 (증언)으로 이어집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머물러 있지 말고 가서 전하라고 명령합니다. 예수님 또한 직접 나타나셔서 같은 사명을 다시 확인시키십니다. 부활은 개인의 깨달음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반드시 공동체를 향해 흘러가야 하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여인들은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움직였고, 전했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들은 것을 간직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전하고 나눌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믿음이 됩니다. 부활의 능력은 믿는 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 증인의 자리에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그 사실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눔 및 적용 1.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나는 어떤 믿음의 태도를 보이고 있나요? 2. 이번 주에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나 믿음을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며 증언하겠습니까? (다음 주 헤븐라이프 축제에 그분과 같이 오면 좋겠습니다.)
by 방송실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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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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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 (눅 15:25-32) 사람은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전혀 다르게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여시는 장면입니다. 밭에서 돌아오던 맏아들은 집 가까이에서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섭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앞에서 그 자리에 선뜻 들어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전도 축제를 앞둔 지금, 오늘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 도전을 던지며 묻습니다. "너는 지금 이 기쁨 안으로 들어오고 있느냐?" 1. 하나님은 잔치 자리에 늘 초대하시며 (권하는) 분입니다. (28절) 맏아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냅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라고 화내며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꾸짖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직접 밖으로 나와 맏아들을 권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모든 이들을 천국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머뭇거릴 때도 직접 찾아오셔서 기쁨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2. 하나님은 맏아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는 맏아들의 분노를 꾸짖지 않습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틀렸다고 하지 않으시고, 먼저 관계를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 보이십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아들을 보며 기쁨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그 깊은 사랑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비난과 정죄가 아닌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3. 하나님은 맏아들도 결국 기쁨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의 잔치 초청은 둘째 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밖에 서 있는 맏아들을 위한 잔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맏아들도 이 기쁨 안에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래 믿어온 사람도, 삶에 지친 사람도, 전도에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도 이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헤븐 라이프 축제는 새로운 영혼만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에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가는 기쁨의 축제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앞에서 맏아들처럼 머뭇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있지는 않았나요? 2. 어떤 방법으로 함께 헤븐 라이프 축제에 참여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들어가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봅시다.
by 방송실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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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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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오다 (요 4:28-30,39-42)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전도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억지로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시하다는 말을 발표(presenting)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즉, 전도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나온 사마리아 여인이 마치 그와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발표)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녀는 과거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자였지만, 대중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담대히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복음의 역사입니다. 1. 하나님은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하셔서 전도자로 세우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삶의 여러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18절) 당시 사회에서 이것은 큰 수치와 상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아시고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 그녀는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아시는 분입니다.” (29절) 예전 같으면 숨기고 싶었을 과거였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즉시) 예수님을 전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8절) 물동이는 그녀가 우물에 온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내려놓고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신 완전한 구원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인생의 갈증이 있습니다. 그 갈증을 해결하실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3. 하나님은 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 (공동체)의 믿음을 세우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0절) 한 사람의 증언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여인의 말로 말미암아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39절) 사람들은 처음에는 여인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께 나왔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믿게 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고, 그 만남을 통해 공동체의 믿음이 형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증언을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역사하십니다. 나눔 및 적용 1.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어떤 갈증이나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키셨습니까? 2. 내가 만난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 물동이를 즉시 내려놓고 전해봅시다.
by 방송실
202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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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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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 (요 1:43-51)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전도를 잘할 수 있을까?”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말을 잘해야 할 것 같고,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고, 상대를 설득해야 할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전도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전도의 가장 아름답고 단순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한 말입니다. “와서 보라.” 이 짧은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전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1. 전도는 예수님을 먼저 (만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본문 4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빌립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그 기쁨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빌립은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났소.”(45절) 전도는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 만남으로 내 삶이 달라졌기 때문에 받은 은혜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2. 전도는 논쟁이 아니라 (초청)입니다.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이 말에는 비판과 의심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나사렛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빌립은 논쟁하지 않습니다. 설득하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 한마디를 합니다. “와서 보라.”(46절) 이것이 전도의 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신앙에 대해 이미 여러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오해도 있고, 편견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논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사람의 마음은 더 닫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도의 가장 좋은 방법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와서 보라.” 교회에 한번 와 보십시오. 예배를 한번 드려 보십시오.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십시오. 이처럼 전도는 논쟁이 아니라 초청입니다. 3. 한 번의 초청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초청으로 나다나엘은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의 정직함을 아셨고,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모습까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처럼 빌립의 “와서 보라”라는 작은 초청이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이렇게 작은 초청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과의 한 번의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빌립은 몰랐을 것입니다. “와서 보라”라는 한 마디가 이렇게 놀라운 일을 만들 줄은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한 번의 초청을 통해 큰 일을 이루셨습니다. 나눔 및 적용 1.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거나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누군가의 작은 초청이나 도움이 있었습니까? 2. 내가 “와서 보라”라고 초청할 수 있는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초청해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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