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보는 것, 다시 보는 것, 새롭게 보는 것
2026-08-09 07:33:18
방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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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실
202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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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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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 (겔34:11-24) 지난주 창세기 11장은 인간의 교만으로 흩으신 심판을 보여주었습니다. 인류는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해 자신들의 탐욕의 왕국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그들은 탐욕 가운데 ‘죄’를 계속해서 쌓아갔고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열국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흩어진 결정적 이유는 그들을 죄에서 떠나게 하고, 영적으로 돌봐야 할 목자(지도자)들이 바로 세워져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이제 그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친히 나서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참된 목자의 세 가지 모습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고) (살피)시는 목자이십니다. (11-12절) 하나님은 '흐리고 캄캄한 날', 양이 '흩어진 모든 곳'까지 찾아가 건져내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찾다가 못 찾으면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라 ‘찾고 또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실제로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민 가운데서 끌어내어 본토로 인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죄의 포로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은 찾으셔서 그분과의 신실한 언약의 관계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양들을 찾으신 후 좋은 (꼴)을 먹이시고 좋은 (우리)에 누워있게 하십니다. (13-1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산 위와 시냇가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시며, 좋은 꼴이 있는 높은 산에 우리를 두셔서 그들이 편히 눕고 살진 꼴을 먹게 하셨습니다. (13절)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15절)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목자들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 하나님이 직접 나서셔서, 당신의 양들을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쉬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실망하고 지칠 때에도 친히 목자되신 하나님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우리 꿈의숲교회 역시 성도들이 안심하고 누워 쉴 수 있는 ‘좋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은 상한 자를 (싸매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6-24절) 상처 난 자, 병든 자가 있다면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좋은 꼴과 맑은 물을 독차지한 뒤, 남은 것마저 발로 밟아 더럽혀 약한 양들이 그것을 먹고 마시게 만드는 자들을 결국 심판하십니다. 이처럼 교회의 모습은 상하고 병든 자를 따뜻하게 돌보고 싸매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나 성도들 사이에서 우리가 좋은 것을 함께 나누기보다 서로 어깨로 밀치고 뿔로 받는 행위는 없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21절) 유일하시고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가정과 일터와 교회와 나라가 아름답게 세워지기를 오늘도 소망합니다. 나눔 및 적용 1. 가장 캄캄하고 흐렸던 시기에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던 순간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 우리 교회 안에서 밀려나 있는 지체를 이번 주에 구체적으로 찾아가 싸매줄 방법은 무엇일까요?
by 방송실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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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이 하나 될 수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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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이 하나 될 수 없는 세상 (창11:1-9) 요즘은 통역기 하나만 있어도 언어가 다른 사람과 대화가 됩니다. ai 번역 앱은 실시간으로 말을 옮겨주고, 이제는 ai 안경을 쓰면 눈앞에 상대방의 말이 자막처럼 떠오릅니다. 언어의 장벽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한 언어로 대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완벽한 소통으로 무엇을 이루려 했습니까? 그들의 말은 사랑도, 예배도,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오직 자기들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소통이 완벽해진다고 해서, 곧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한 언어를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습니다. (1-4절) 하나님이 주신 하나 된 언어로 그들이 계속 나눈 말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벽돌과 역청이 아니라,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이 탑의 진짜 재료였습니다. 이는 하늘에 자기 자리를 높이려 했던 가장 오래된 교만(사 14:13-14)과 같은 뿌리입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행사를 다 (보고) 계십니다. (5-7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5절). 하나 됨 자체는 선한 것이나, 중요한 것은 '무엇 안에서의 하나 됨인가'입니다. 바벨의 사람들은 완전히 하나처럼 보였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목표와 이해관계로 뭉치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모든 행사도 그렇게 보고 계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높아지려는 모든 것들을 (흩으십니다). (8-9절, 행 2장)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8절). 이는 혼돈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거짓 질서를 해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다락방 사건 당시 하나님께서는 다시 일하셨습니다. 바벨에서는 하나였던 언어가 흩어져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오순절에는 여러 언어의 사람들이 각각 자기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서로가 알아듣게 되었습니다(행 2:6). 하나 됨의 기준은 언어의 통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눔 및 적용 1. 지금 내가 속한 가정,일터,공동체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같은 목표와 이해관계만으로 하나 되어 있습니까? 2. 지난 세월 나 자신이 '내 이름'을 내기 위해 애썼던 부분은 무엇이며, 그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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