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앞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욥 23:1-10)
우리는 흔히 힘든 일을 당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합니다. 나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만나면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분의 응답도 들리지 않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 순간 믿음도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오늘 말씀에 나온 욥도 바로 그런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욥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 가운데 ‘믿음의 실마리’를 넣어두신 채 끝까지 버티고 살 수 있는 소망을 허락하십니다.
1. 앞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더욱 갈망해야 합니다. (3절)
욥은 3절에서 탄식이 아니라 사모함을 고백합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의 본래의 뜻은 "오, 내가 하나님을 찾아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만 있다면!"이라는 간절한 소원의 언어입니다. "발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차’는 우연히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헤매며 찾던 것을 붙잡는다’는 뜻으로 절박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이 극심할수록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쉽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고난 당한 자가 하나님의 처소를 찾아 나서기를 바라십니다. 욥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은 그 갈망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이끄시는 손길임을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8-9절)
8-9절에서 욥은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곧 사방을 다 살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고백입니다. 흥미롭게도 욥은 31장, 자신의 무죄를 하나님 앞에 걸고 맹세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31:4).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길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전제 위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욥은 23장에서 하나님을 감정적으로는 찾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만큼은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느낌으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할 수 있지만, 동시에 말씀과 믿음의 전제로 하나님의 임재를 붙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시고) 우리를 (단련)하시는 분입니다. (10절)
앞뒤로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도 욥의 고백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확신이 "단련하신다"는 소망으로 이어지고, 그 소망이 "순금같이 나오리라"는 믿음의 선언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앞뒤가 보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 순전한 믿음으로 빚어가시는 그분의 손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앞 길이 깜깜하여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그 단련의 과정을 통과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눔 및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2. 지금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응답이 없는 것 같은 순간에도, "그가 내 길을 아신다"는 믿음의 전제를 붙들기 위해 이번 한 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매일큐티, 새벽기도작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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